1. 노예계약서


 “아…… 맛있겠다.”

 휘훈은 중국집 앞에서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달달한 자장면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제 아침에 집에 남은 마지막 라면을 끓여먹고 여태 공복인 그였다. 거기다 돈이 없어서 집까지 걸어가고 있는 길이었다. 

 차희가 공연을 보러왔다면 같이 저녁이라도 먹었을 텐데 무슨 일인지 공연장에 오지 않았다. 거기다 그는 핸드폰요금도 미납이라 전화를 할 수 없었다. 

집으로 가며 음식점이 나올 때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문을 다 당하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집근처에 있는 교회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렇게 먼 거리를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공복에 걸었더니 식은땀이 나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 밖에 있는 테이블에 누군가 먹다 남은 컵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다툼을 벌였다. 

 “자…….잠깐 쉬었다 갈까? 다리가 아프네.”

 그는 주변 눈치를 살피며 테이블 앞에 앉았다. 통통하게 불어터진 면이 빨간 국물과 어울려 그를 유혹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이 컵라면 용기로 다가가고 있었다. 

 “휘훈아!”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차희였다. 아무래도 예쁜 그녀가 마치 천사처럼 보이는 그였다. 

 “왜 이제와. 집에서 기다리다가 안 오기에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오늘 갑자가 일이 생겨서 공연 못 보러갔어. 미안해. 밥 안 먹었지? 맛있는 거 먹으러가자.”

 차희는 휘훈의 손을 붙잡고 이끌며 말했다. 시간이 늦어서 문을 열은 식당이 많지 않았다. 결국 24시간 분식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차희는 맛있는 것 사줘야 하는데 분식집이 뭐냐고 투덜거렸다, 

 차희는 허겁지겁 라면과 김밥을 먹는 휘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저녁을 먹은 후였다. 그녀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동안 휘훈은 순식간에 라면을 비워냈다. 

 “후아…….응? 아직 다 안 먹었어?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어? 그래 다녀와.”

 휘훈이 화장실을 간 동안 차희는 그의 기타가방에 이만 원을 꼬깃꼬깃 접어 넣었다. 그녀도 용돈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이었지만 휘훈보단 넉넉했다. 그녀가 친구들과 커피한잔 마시며 수다를 떨 돈이면 그는 밥을 한 끼 굶지 않을 수 있었다. 

 보통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집에 바래다주는 것과 달리 차희는 휘훈을 집에 바래다주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남들은 도대체 왜 만나냐고 하지만, 그녀에겐 가장 힘이 들 때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오늘따라 어딘가 쓸쓸했다. 차희는 창밖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사이 차연은 술에 취해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만 원짜리를 주어서 건네며 꼬부랑 발음으로 말했다. 

 “아이쒸 택시비가 뭐가 그렇게 비싸요. 만원이면 되잖아요.”

 택시기사는 답답한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손님. 아휴 술 냄새……. 요금이 만 칠천 원 나왔습니다. 달랑 만원만 주시면 어떻게 해요.”

 “아 몰라몰라 만원밖에 없다니까요.”

 “손님. 자꾸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던 차희는 차연을 발견하곤 반갑게 부르며 달려갔다. 

 “언니!”

 비틀거리는 차연을 차에 기대게 해놓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있던 택시기사는 차희를 발견하곤 담배를 끄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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